사랑은 언제 균열이 시작되는가.
누군가는 말한다. "서로 다르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했을 때."
또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이해하려는 마음이 지쳐버렸을 때."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된 연극 《랑데부》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타인의 상처를 품고 살아가는 두 사람.
누군가는 이해받기를, 누군가는 이해하지 않기를 원하는 관계.
이 연극은 사랑이란 이름으로 서로를 향하지만 끝끝내 닿지 못하는 이들의 여정을 그린다.


출처 및 정보
- 연극명: 《랑데부》
- 공연장소: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랑데부란 우주항공 용어로 우주에서 서로가 맞닿는 다는 뜻이라고 극중에 묘사된다.
따라서 연극 제목 <랑데부>는 단순한 만남이 아니라, 삶과 상처, 사랑과 오해가 교차하는 지점에서의 '운명적 마주침'을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두 주인공이 과거의 트라우마와 상처를 품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그 ‘정면충돌’이 바로 이 작품의 ‘랑데부’인 셈은 아닐까?
부모님을 모시고 연극을 보러 다녀왔다. 두 명의 배우가 100분을 꽉 채워 극도의 몰입감을 유도하는 게 놀라울 정도였다.
나는 너무나 유명한 두 배우 박성웅 배우님과 이수경 배우님의 연극을 보고왔는데 개인적으로 이 극은 단순한 사랑 이야기를 넘어 자신과 타인에 대한 이해, 그리고 삶과 트라우마에 대한 내용이라고 생각되어 이 두 분의 구성이 참 좋았지만, 연인끼리 데이트 할 생각이거나, 좀 더 사랑 이라는 주제에 집중하고자 하면 보다 젊은 샤이니 민호님의 연기를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나는 당일 예약이라 맨 뒷자리에서 보고왔는데 사실상 무대가 가운데에 있고, 양 옆으로 네 줄씩 길게 좌석이 세팅되어있어서 오히려 앞자리는 무대 단차로 인해 목이 아프지 않알까 싶기도 했다.
앞 뒤 상관없이 그냥 가운데 자리에서 보는게 더 좋을 것 같았다.
실제로 무대와 좌석이 아주 가까워서 침도 많이 튀던데.. 뒷자리 조심스레 추천해본다.
혼자 한 번 더 가서 보고싶은 연극이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좌석이 조금 불편할 수있는 접의식 의자 였다는 점과, 티켓이 요즘 트렌드와 맞지 않게 굉장히 예쁘지 않았다.
(문화생활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티켓을 소장하거나 무대와 함께 사진을 찍고 싶을 수 있는데 이 부분에서 아쉬웠다)

“나는 늘 다른 사람을 위해 나를 버렸다. 나는 나를 증오한다.”
무대가 시작되자마자, 강렬한 어둠과 함께 여자의 독백이 터져 나온다.
이 대사는 단지 극 중 인물의 고백이 아니다.
우리 삶에서 너무 자주 반복되는 역할극,
즉 타인을 위해 스스로를 억누르고 살아온 이들의 아픈 진실이다.
여자는 끊임없이 타인을 돌보며 살아왔다.
어쩌면 그녀는 사랑받기 위해 자신을 희생해야 한다는 신념을 오래도록 품어온 인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끝에 남은 건, 자기혐오다.
그녀는 말한다.
"나는 늘 다른 사람을 위해 나를 버렸다. 나는 나를 증오한다."
가정에 소흘한 아버지에 대한 아픔, 어쩌면 여자는 늘 사랑받기 위해, 관심받기 위해 자신을 희생해야 했는지 모르겠다.
이 문장은 여성의 과거를 말해주는 동시에, 현재의 고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어쩌면 이 연극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어린시절의 트라우마로 끊임없이 도망치는 남자
남자는 완전히 반대편에 있다.
그는 '희생'보다는 '회피'의 방식으로 자신을 지켜왔다.
어릴 적 부모님을 갑작스레 잃고,
"부모님은 하늘나라에 있어"라는 말을 들은 그는, 그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그는 우주로 가야겠다고 결심한다.
천문학자가 되고, 과학자가 되고, 로켓을 쏘아 올리는 사람이 되기로.
하지만 그는 단 한 번도 로켓을 쏘지 못했다.
어쩌면 그의 진짜 목적은 '천국'에 가는 게 아니라,
실패를 통해 또다시 상실을 겪지 않기 위해 ‘성공하지 않음’을 선택한 것일지도 모른다.
“죽을 만큼 노력해본 사람은 안다. 노력해도 가질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이 대사는 단순한 좌절이나 사랑에 대한 고백이 아니다.
그는 정말로 죽을 만큼 노력했지만,
그래서 더더욱 두려웠다.
이루지 못하는 것,
아니, 이루었는데도 무너지는 것이 더 두려웠던 것이다.
그가 우주로 가려던 진짜 이유는,
그 어딘가에 있을 부모님이 아니라 사라진 자신을 찾기 위한 여정이었는지도 모른다.
가까워지려는 여자 vs 멀어지려는 남자 – 사랑은 왜 어긋나는가
여자는 그의 상처를 껴안고 싶어 한다.
하지만 남자는 상처를 절대 밖으로 꺼내지 않으려 한다.
이들이 처음 사랑에 빠졌을 때,
그 다름조차 아름답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 차이는 균열이 되었고,
결국엔 무너짐이 되었다.
여자가 한걸음 다가가면
남자는 두걸음 물러난다.
그 반복 속에서,
사랑은 점점 멀어지고,
오해는 쌓여간다.
그리고 극 중 한 장면에서 남자는 이렇게 말한다.
“너의 불행이 나에겐 행복이었어.”
이 대사는 듣는 순간, 뇌리를 강하게 때린다.
사랑은, 누군가의 결핍 위에 세워질 수 있을까?
내가 강한 이유가 너의 약함 때문이라면,
그건 사랑일까, 지배일까?
남자의 이 말은 역설이다.
그는 진심으로 그녀가 불행하길 바라지는 않았지만,
그녀가 약할 때만 자신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스스로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죄책감이고, 그것이 이별의 씨앗이 된다.
무대와 움직임, 음악의 삼중주 – 예술로서의 연극
이 작품은 단지 이야기만으로 관객을 끌어당기지 않는다.
무대 연출, 조명, 움직임, 음악 모든 것이 완벽하게 맞물려 하나의 ‘행위예술’을 구성한다.
특히, 배우들이 선보이는 즉흥적인 움직임 – 춤처럼 보이는 장면은 실제로도 즉흥 안무로 구성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 동작 하나하나가 내면의 감정을 시각화하는 듯했다.
대사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하는 몸짓이 있었고,
침묵이 더 큰 감정을 일으키기도 했다.
트레이드밀 위에서 힘껏 뛰어 서로에게 닿으려 하지만 결국 제자리에서 닿지 못하는 장면은 놀라웠고,
무대는 칠흑같이 어두운 배경 속에서 빛나는 조명을 통해 감정을 더욱 또렷하게 만든다.
밤하늘을 표현한 장면에선,
별빛 아래 펼쳐지는 독백이 관객을 마치 무중력 상태로 이끈다.
무대 옆 피아노 연주자도 인상적이었다.
배우들과 함께 무대 위에 존재하며 그들의 감정선을 따라 직접 연주를 이어간다.
배경음악이 아니라, 극의 한 등장인물처럼 작동한다.
그 덕분에 감정의 리듬이 끊기지 않고 자연스럽게 흐른다.
클라이맥스 – 서로의 역할을 바꿔 연기하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막바지에 이르러 두 사람이 서로의 ‘어린 시절’을 연기하는 부분이다.
남자가 여자의 어린시절을,
여자가 남자의 상처를 연기한다.
이 장면은 단순한 장치가 아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상대방의 고통을 '살아내는' 행위다.
이해의 끝, 공감의 절정.
그 장면에서 나는 마음이 뭉클했다.
그것은 ‘사랑이란, 결국 서로를 대신해 살아주는 것’이라는 메시지처럼 다가왔다.
다 말하지 않아도, 대신 울어주고
다 알지 못해도, 대신 무너져주는 사람.
그게 사랑 아닐까.
총평 – 사랑은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이해되는 것이다
《랑데부》는 단순한 로맨스 연극이 아니다.
그것은 상처받은 인간들에 대한 기록이고,
우리가 얼마나 타인을 이해하지 못한 채 사랑하려 했는지를 반성하게 만든다.
관계는 맞춰가는 것이 아니다.
서로가 가진 어둠과 결핍을 ‘이해하려는 의지’가 있을 때
비로소 관계는 ‘동행’이 된다.
독자에게 남기는 말
《랑데부》는 당신이 사랑했던 모든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이 왜 실패했는지를, 다시 묻고 싶게 만들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
결국 그 사람의 고통과 외로움까지 함께 살아내는 일이라면
당신은 그 무게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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