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감성을 자극하는 일본 문학의 정수, 설국 – 가와바타 야스나리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첫문장 부터 유명한 바로 그 책: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소개한다.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의 _설국(雪国)_은 일본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로, 그 첫 문장만으로도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 소설은 일본 특유의 서정성과 깊은 감성을 녹여낸 작품으로, 문장의 아름다움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책이다. 특히 겨울철에 읽으면 더욱 깊은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기에, 완벽한 겨울 추천 도서로 손색이 없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그의 문학 세계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일본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일본 문학의 서정성과 정적(靜的) 미학을 극대화한 작가다. 그는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고아로 성장했으며, 이러한 경험이 그의 작품 속에 짙은 고독과 쓸쓸함으로 스며들었다.
그의 대표작인 설국, 천우학, 명인, 이즈의 무희 등은 모두 정제된 문체와 섬세한 감정 묘사를 특징으로 한다. 특히 _설국_은 그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서정적인 소설로 평가받으며, 일본 문학 특유의 감성과 정서를 경험할 수 있는 작품이다.
설국 줄거리 및 배경
_설국_은 일본의 깊은 산골 마을을 배경으로 도쿄 출신 남자 시마무라와 지방 기생 고마코의 애달픈 사랑 이야기를 그린다.
시마무라는 교양 있는 도시 남성이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적인 세계를 추구하는 인물이다. 반면, 고마코는 현실적이며 감정이 풍부한 여성이자 사랑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인물이다. 이 둘은 서로를 향한 강한 끌림 속에서도 진정한 교감을 이루지 못하며 점점 더 공허한 관계 속으로 빠져든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설국’은 일본 니가타 현의 온천 마을을 모델로 한다. 겨울이면 끝없이 쌓이는 눈으로 뒤덮인 이곳은 고립되고 적막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러한 배경은 시마무라와 고마코의 사랑이 더욱 덧없고 쓸쓸하게 느껴지도록 만든다.
문장의 아름다움, 그리고 서정적인 묘사
_설국_의 가장 큰 매력은 그 서정적인 문장이다. 일본 문학 특유의 미학적 감성이 가득하며, 한 문장 한 문장이 시처럼 아름답게 다가온다.
“거울 속에는 저녁 풍경이 흘렀다.”
“… 차창에 비치는 처녀의 윤곽 주위를 끊임없이 저녁 풍경이 움직이고 있어, 처녀의 얼굴도 투명하게 느껴졌다.”
이러한 표현들은 단순한 풍경 묘사가 아니라 인물의 감정과 내면 상태를 반영하는 상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거울 속 저녁 풍경은 흐르고 있지만, 시마무라와 고마코의 관계는 정체되어 있다. 그리고 고마코의 투명한 얼굴은 시마무라가 그녀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공허함을 암시한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시마무라가 은하수를 바라보는 장면은 이 소설의 백미다.
“발에 힘을 주며 올려다본 순간, 쏴아 하고 은하수가 시마무라 안으로 흘러드는 듯했다.”
이 장면은 현실과 환상이 뒤섞이는 듯한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며, 시마무라의 내면적 공허함과 덧없는 사랑의 운명을 극적으로 상징한다.
_설국_이 주는 메시지
_설국_은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사랑의 불완전함, 인간 관계의 단절, 그리고 감정의 덧없음을 담고 있다. 시마무라는 고마코에게 끌리면서도 그녀를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고마코는 그를 향해 온 마음을 내어주지만, 시마무라는 결국 냉담한 거리감을 유지한다.
이러한 관계는 현실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서로를 원하지만 끝내 완전한 이해에 도달하지 못하는 관계. 가까이 있으면서도 닿을 수 없는 거리감. 결국, 우리는 모두 각자의 ‘설국’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_설국_은 빠른 전개나 극적인 반전이 있는 소설이 아니다. 워낙 유명한 책이기도 하고 노벨상 수상작가의 책이라 큰 기대를 하고 보면 살짝 실망할 수도 있을 법 한 책이다. 하지만 한 문장, 한 장면을 찬찬히 음미하며 읽다 보면 그 깊고도 아름다운 감성에 빠져들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문체가 너무 좋아서 일본어를 잘했더라면, 일본 문화에 대해 더 잘알았더라면 원작 그대로 읽어 남기고 싶은 책이었다.
특히 겨울철, 창밖으로 눈 내리는 풍경을 보며 읽으면 더욱 몰입감 있는 독서가 될 것이다.
혹시 아직 _설국_을 읽어보지 않았다면, 이번 겨울 이 책을 펼쳐보는 것은 어떨까?
인상 깊었던 구절
아래는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구절들을 모아봤다.
설국 by. 가와바타 야스나리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거울 속에는 저녁 풍경이 흘렀다.
비쳐지는 것과 비추는 거울이 마치 영화의 이중 노출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등장인물과 배경은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 차창에 비치는 처녀의 윤곽 주위를 끊임없이 저녁 풍경이 움직이고 있어, 처녀의 얼굴도 투명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정말로 투명한지 어떤지는, 얼굴 뒤로 줄곧 흐르는 저녁 풍경이 얼굴 앞을 스쳐 지나는 듯한 착각을 일으켜 제대로 확인할 기회가 잡히지 않았다.
이윽고 제각기 산의 원근이나 높낮이에 따라 다양하게 주름진 그늘이 깊어 가고, 봉우리에만 엷은 별을 남길 무렵이 되자, 꼭대기의 눈 위에는 붉은 노을이 졌다.
고마코가 간절히 다가오면 올수록 시마무라는 자신이 과연 살아 있기나 한 건가 하는 가책이 깊어졌다.
이를테면 자신의 쓸쓸함을 지켜보며 그저 가만히 멈춰 서 있는 것뿐이었다.
고마코가 자신에게 빠져드는 것이 시마무라는 이해가 안 되었다.
고마코의 전부가 시마무라에게 전해져 오는데도 불구하고, 고마코에게 시마무라의 그 무엇도 전해지는 것이 없어 보였다.
시마무라는 공허한 벽에 부딪는 메아리와도 같은 고마코의 소리를, 자신의 가슴 밑바닥으로 눈이 내려 쌓이듯 듣고 있었다.
이러한 시마무라의 자기 본위의 행동이 언제까지나 지속될 수는 없었다.
희미한 달밤보다 엷은 별빛인데도 그 어떤 보름달이 뜬 하늘보다 은하수는 환했고, 지상에 아무런 그림자도 드리우지 않는 흐릿한 빛 속에 고마코의 얼굴이 낡은 가면처럼 떠올라, 여자 내음을 풍기는 것이 신기했다.
올려다보고 있으니 은하수는 다시 이 대지를 끌어안으려 내려오는 듯했다.
거대한 오로라처럼 은하수은 시마무라의 몸을 적시며 흘러, 마치 땅끝에 서 있눈 것 같운 느낌도 주었다.
고요하고 차가운 쓸쓸함과 동시에 뭔가 요염한 경이로움을 띠고도 있었다.
정신없이 울부짖는 고마코에게 다가가려다, 시마무라는 고마코로부터 요코를 받아 안으려는 사내들에게 떼밀려 휘청거렸다.
발에 힘을 주며 올려다본 순간, 쏴아 하고 은하수가 시마무라 안으로 흘러드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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